1962년 5월 어느 주말 나는 오인광, 진교춘과 함께 도봉산 선인봉 전면B코스에 도전하였습니다.
13개 월간의 투병생활 끝에 나보다 1년 늦게 입학한 오인광의 끈질긴 권유에 내가 응해 암벽 등반을 시도한 것인데 만만하게 생각하여 택한 코스지만 3년만의 암벽이고 또 그전까지 톱을 서 본 일이 없는 내가 선등하려니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두 핏치 마칠 무렵 나는 기력이 소진되었고 내가 쉬는 동안 인광이 시도하였으나 중학생 시절부터 한국산악회장을 지낸 바위 도사 장승필이 가장 손이 맞는 파트너라고 말할 정도로 바위에 익숙한 인광이지만 1년 넘게 병상에서 지내고 회복이 덜 된 터라 진행하지 못하고 주저 앉았습니다.
그동안 쉬던 내가 다시 시작하여 3, 4핏치를 마치고 테라스에 올랐을 무렵 날이 저물고 하늘에 별이 보이기 시작하였습니다.
정상을 거쳐 더듬더듬 천축사까지 내려온 때가 아마 자정 무렵이었던 것 같습니다.
스님들에게 부탁하여 방에 들어가 자고 다음날 아침에야 하산하였습니다.
그날 이후 인광은 수원 캠퍼스에서 멀지 않은 칠보산의 바위를 찾아 친구들과 연습하기도 하고 주말이면 서울로 와서 북한산과 도봉산의 바위를 찾아 오르 내리기 시작하였습니다.
농대 산악회라는 단체 등록을 시도한 것은 한해 후이고 김만식이 회장을 맡고 조직을 갖춘 것은 2년 지난 64년이지만 인광의 요청으로 암벽등반을 시작한 때를 산악회의 시작으로 보아 농대산악회의 창립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그로부터 53년이 지난 2015년 정철의대장의 선등으로 다시 한번 오르면서 60주년 되는 해에 다시 오르고 싶다는 뜻을 밝혀 드디어 지난 주말 시도하게 되었습니다.
이 코스가 처음이라는 17남윤수가 톱을 서고 경험이 많은 75박완수가 세컨에서 안내와 빌레이를 보고 이어서 나와 21강준아 그리고 캡틴 19조유빈이 라스트에서 올랐습니다.
요즈음의 등반 행태와는 맞지 않는 침니가 많은 코스여서 아무도 찾는 사람이 없는 소위 노가다 코스를 내가 주장하여 오르게 하여 미안하지만 7년 전에는 둘이 중도 포기하여 정대장과 나만 올랐으나 이 날은 많이 늦지 않은 시간에 전 대원이 끝까지 오를 수 있어 좋았습니다.
개인적으로 15년 전에 간경변 진단을 받은 이후 조심스럽게 등산을 시도하고 8년 전 일흔이 넘은 나이에 인수봉 전면B코스를 오르면서 다시 시작한 암벽등반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습니다. 대략 팔순까지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하였지만 막상 금년 들어 5월에 고등학교 동창들과 함께 팔순 기념 인수봉 등반을 성공적으로 마쳤고 엊그제는 나의 팔순이면서 60년 전에 농대산악회가 시작된 코스를 그 당시 내 또래의 60년 후배와 함께 오르는 기분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이 날 오르면서 코스의 핏치마다 옛 기억이 되살아났습니다. 첫 핏치의 출발점이 예전과 달랐고 셋째 핏치 앞두고 내가 지쳐 주저 앉던 자리도 생각 났습니다.
침니 끝나고 테라스로 건너가 어두워지는 날씨를 걱정하며 뒤에 올라오는 친구들을 재촉하는데 그러지 않아도 힘들어 죽겠다며 보이는 짜증스러운 반응까지 60년 지난 일이 생생하게 기억되는 일이 신기합니다.
나이 여든에 암벽 등반이라니 생각하지 못하던 일이지만 막상 오르고 보니 그런대로 할만 했다는 생각이 들면서 다만 기력이 전만 못하니 오를 수 있는 범위가 자꾸 줄어드는 느낌이 듭니다.
언제까지 오를 수 있으려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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