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농업생명과학대학산악회 ::: CALSAC SNU

ㆍ작성자	김신혜
ㆍ작성일	2022/06/14 (화)
ㆍ분 류	OM 산행
ㆍ등반대원	13김신혜 및 한국등산학교 사람들

ㆍ추천: 0 ㆍ조회: 355

20220614 고독길 선등(농대 산행X)
농대 산행은 아니지만 저에게 의미 있는 산행이라 보고서를 공유합니다^^

작년에 정훈이, 유빈이, 세강이(성대)랑 고독길에 갔을 때 등반에 막 흥미를 붙이던 때라 고독길 정도는 선등을 서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런데 당시 인수봉에 안 간지가 너무 오래돼서 우선은 세강이 선등으로 따라가면서 피치마다 길과 확보지점 등을 유심히 살피면서 내가 이 길을 선등 설 수 있을지 생각하면서 올라갔었다. 결론은 1피치와 영자크랙을 제외한 나머지 구간은 무섭지만 설 수 있겠다는 거였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1피치-선등 불가, 2피치-선등 가능, 3피치-선등 가능?, 4피치-선등 완전 가능, 5피치-선등 무조건 가능'할 것으로 판단했다.

그로부터 약 1년의 시간이 흘렀고, 지난주에 한국등산학교 사람들과 설악산에 갔을 때 한 언니와 내가 번갈아서 고독길 선등을 해보자는 얘기가 나왔다. 그렇게 등반 약속을 잡고 작년에 기록해놓은 메모를 보면서 약간의 이미지 트레이닝(?)을 했다. 등반 당일, 이상하게 잘 자고 일어난 느낌에 시간을 보니 일어나야 할 시간이 지나있었다. 부랴부랴 준비해서 나갔지만 20분 지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늦은 그 시간 동안 먼저 도착한 사람들이 결론을 내리고 나에게 통보했다. 선등은 전 피치를 서는 것이 의미가 있으니 처음부터 끝까지 다 내가 설 거라고. 같이 하기로 한 언니는 아직 준비가 안 되었다고 했다.

1피치와 영자크랙, 참기름 바위는 선등을 서게 될 거라고 지난 일주일 간 단 한 순간도 상상하지 않았기 때문에 현실을 부정했다. 얼마나 심하게 부정했는지, 어프로치하는 동안 오히려 그 구간들을 선등 설 거라는 생각 자체가 안 떠올라서 오히려 긴장도 안 될 정도였다. 또 한 편으로는, 최근 실력이 많이 늘었기 때문에 그래도 1피치 정도는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하는 자신감도 있었다. 물론 영자크랙과 참기름 바위는 인생에서 선등을 서게 될 거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자신감이 있는지 없는지 판단할 수조차 없었다.

70m 자를 들고 하루재까지 쉬지 않고 올랐는데 생각보다 지치지 않아서 체력이 좋아진 걸 느꼈다. 이후 중간중간 쉬면서 여유롭게 고독길 초입에 도착했는데 대기중인 사람이 여럿 보였다. 앞에 몇 명이 있냐고 물어보니 30명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올라가보니까 거의 10명 정도가 1피치 시작 지점에서 대기하고 있었는데, 그 분들도 앞 팀 때문에 이미 몇 시간을 기다린 상태라고 하셨다. 대기가 많을까봐+내가 늦어지면 뒷팀에 방해될까봐 일부러 120 종점에서 10시에 만나(나 때문에 10시 20분) 여유롭게 출발한 거였는데 여전히 사람이 많아서 놀랐다. 6명이서 두 팀으로 고독길을 갈 생각으로 자일을 두 동만 가져왔기 때문에 할 수 없이 행동식으로 점심을 먹으며 기다렸다.

1~5피치 구간 중에 1피치가 가장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앞 팀 사람들부터 우리팀에서 먼저간 세 명이 올라가는 것까지 유심히 지켜봤다. 볼트가 없으니 캠을 치는 위치도 잘 보고 기억해뒀다. 내 차례가 되었는데 생각보다 긴장이 안 됐다. 왼쪽에 있는 좋은 스탠스에 올라서서 오른발을 옆으로 보내고 한 두 동작 정도 했더니 벌써 캠을 설치할 수 있는 곳에 도달했다. 왼발을 뒤쪽으로 약간 멀리 있는 좋은 곳에 디뎠더니 자세가 나름 안정적이어서 캠 설치에 대한 공포가 약간은 사라졌다. 원래는 캠을 설치하다가 힘이 빠지거나, 자일을 걸려고 빼다가 떨어지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이 있었는데 생각보다 안정적으로 캠을 설치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먼저 간 채봉 선배는 바로 위에 캠을 하나 더 설치했는데, 나는 오히려 캠을 설치하다가 힘이 더 빠질 것 같아서 그냥 진행했다. 어느정도 올라와서 왼쪽으로 넘어가야 하는데, 생각보다 손도 괜찮고 (못 쳤지만) 캠이 있다는 사실이 너무 든든해서 무섭지 않았다. 무난하게 올라가다가 한 번 턱을 넘어서야 하는데, 대충 잡고 올라갈까 하다가 혹시 몰라서 왼손으로 약간 아래쪽에 있는(그래서 자세 자체는 좀 더 안 좋아지는) 엄청 좋은 홀드를 잡았다. 밑에서 빌레이를 봐주시던 밍구쌤이 '거기 넘어설 때까지만 조심해!'라고 말하시는 순간 조심 안 하고 발이 미끄러지면서 소리를 질렀다. 다행히 직전에 좋은 홀드로 손을 고쳐잡아서 버티고 바로 올라갈 수 있었다.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긴 했지만 손이 너무 좋아서 사실 하나도 안 무서웠다. 위로는 거의 등산로라 빠르게 올라가서 나무에 확보를 했다. 쌍볼트에는 채봉 선배네 팀이 아직 있었다. 앞 팀이 약간 늦어지는지 올라가는 내내 조금씩 기다려야 했다.

2피치는 앞을 막고 있는 바위 때문에 채봉 선배가 가는 걸 거의 보지 못 했다. 그래도 태어나서 처음 인수봉에 와서 고독길 등반을 했을 때 가장 인상적으로 남았던 길이고, 작년에 왔을 때 쉽다고 느꼈던 곳이라 크게 긴장이 되지 않았다. 시작할 때 살짝 위에 좋은 발자리가 있었는데 밍구쌤이 아래에서 시작하라고 하셔서 보니까 그만큼은 아니지만 아래쪽에도 좋은 발자리가 있었다. 오른쪽으로 살짝 갔다가 위로 올라서서 바로 캠을 설치하고 왼쪽으로 넘어갔다. 위로 올라가면 바위 틈에 고정 슬링이 있는데, '내가 선등이라면?'이라고 생각하면서 후등으로 올라갈 때 그걸 보면서 '이걸 어떻게 믿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오히려 선등이 되니까 거기에 무한 신뢰가 갔다. 아무 확보도 없는 상태보다는 백만배 정도 나아서 그런 것 같다. 슬링 바로 위에 있는 몸을 밀어내는 바위에 도착해서 오른손으로 좋은 데를 확실하게 잡고 왼손도 최대한 좋은 곳을 잡고 바로 오른쪽으로 넘어갔다. 첫 바위 때 이 동작을 못 해서 체감상 몇 시간을 왼쪽에 앉아있었던 것 같은데 허탈할 정도로 쉬웠다. 오히려 그 다음 오른쪽으로 넘어가는 게 무서웠다. 아마 내가 너무 위로 올라간 상태여서 그랬던 것 같다. 손이랑 발이 다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아서 오른발을 많이 위로 높여서 딛고 넘어간 것 같다.

수현 언니가 올라오는 동안 나는 앞 사람들이 등반하는 걸 보려고 미리 3피치 시작점으로 이동했다. 외롭게 동굴을 지나가다가 위에 서있는 채봉 선배를 발견해서 갑자기 엄청 반가웠다. 어디 밀림에서 길 잃었다가 사람 만난 느낌이었다. 아무튼 채봉 선배가 거기 있다는 건 아직 앞 팀이 끝나지 않았다는 뜻이어서 또 기다리겠군 생각했다. 덕분에 여유롭게 다른 사람들이 등반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예전에 3피치 시작 부분도 내가 꽤나 무서워했던 것 같은데, 이번에는 뭐 떨어지면 밑에서 받아주겠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기록에 따르면 발자리가 좋은 데가 있어야만 해서 잘 찾으면서 딛었다. 밍구쌤의 지시에 따라 캠을 하나 설치하고 레이백으로 조금 더 올라갔다. 이제 어떡하지? 싶을 때쯤 위쪽에 아주 좋은 발자리가 보였다. 몸을 구겨서 억지로 거기를 딛고 일어나서 캠을 설치했다. 선등 설 때 유연한 게 최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발을 거기까지 올릴 수 없었다면 불안한 곳을 디뎠어야 할테니까... 그 위에 별로 어렵지 않아서 그냥 가면 되는데 오래된 피톤 같은 데다가 짧은 알파인 드로우를 설치해서 괜히 자일만 무거워졌다. 왼쪽 쌍볼트로 올라설 때도 아주 살짝 무서웠는데 후등으로 한 번도 미끄러진 적 없는 길이라 이번에도 괜찮겠지 하면서 올라갔다.

살짝 걸어 올라가서 4피치 출발점에 도착!했는데, 나는 항상 오른쪽의 약간의 슬랩? 같은 길로 갔어서 그리로 갔는데 밍구쌤이 왼쪽으로 갔어야 한다고 하셨다. 그래서 왼쪽을 보니까 몰랐던 길이 있기는 한데 흙밭이어서 나는 다음에도 오른쪽으로 갈 것 같다! 암벽화를 벗은 상태라면 왼쪽으로 가겠지만. 왠지 모르겠지만 예전에는 쉽다고 생각했던 4피치가 오히려 제일 무섭고 힘들었다. 발재밍을 믿고 가면 되지만 손이 확실하지 않고 내가 발을 별로 못 믿었던 느낌? 두 번 째 캠을 설치할 때 제대로 안 걸린 것 같았는데 밍구쌤이 밑에서 됐다고 하셔서 그냥 올라갔다. 나중에 아닌 게 밝혀졌지만... 내가 친 캠을 믿을 수 없다는 걸 알았지만 어차피 안 떨어질 거라서 별로 안 무서웠다. 이 날 하루종일 캠을 거의 다 잘못 쳐서 밍구쌤이 올라오시면서 나 죽으려고 한다고 하셨다. 그래서 피치 끝날 때마다 다시 알려주셨는데 계속 잘못 쳤다... 약간 머리가 안 좋은 것 같다. 근데 웃긴 게 대부분의 경우에 나도 내가 잘못 친 걸 알았는데 그 잘못 친 캠도 되게 믿음이 갔다. 캠 하나 치는 순간 모든 근심이 사라진다... 이런 캠도 이렇게 믿음이 가는데 잘 칠 줄 알게 되면 조금 더 어려운 길도 가볼 수 있겠지?! 중간에 한 번 더 작은 캠을 대충 설치했는데 이건 진짜로 패션용으로(?) 설치한 거라 완전 대충했는데 밍구쌤은 보고 많은 충격을 받았을 수도 있을 것 같다. ㅋㅋ 쌍볼트가 비어 있었는데 밍구쌤이 나무에 확보하라고 해서 나무에 확보를 하고 빌레이를 봤다. 쌍볼트에 확보하면 자일이 쓸릴 수 있어서 나무에 하는 게 좋은 것 같다.

5피치는 첫 등반 때도 깜짝 놀랄 정도로 쉬웠고 항상 계단이라고 생각하는 곳이라 전혀 긴장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이후에 있을 영자크랙과 참기름 바위 때문에 약간 긴장이 되었을 수 있지만... 중간에 캠을 하나 설치하긴 했는데 사실 없어도 크게 상관 없었을 것 같다. 전에 정훈이가 오른쪽으로 갔다가 낭패를 본 적이 있기 때문에 오른쪽으로 빠지지 않으려고 주의하면서 올라갔다. 귀바위와 커다란 촉스톤 사이의 틈으로 올라가서 쌍볼트에 확보를 했다.

우리팀 앞 세 명은 5피치 완료 지점에서 영자크랙으로 넘어가는 곳을 빌레이를 봐서 넘어가고 있었다. 농대는 여기 빌레이 안 봐주는데... 그래서 밍구쌤이 수현 언니 빌레이 보는 동안 나 혼자 그냥 넘어갔다. 스태밍 하거나 발자리 잘 찾아서 왼쪽 벽을 잘 이용하면 갈만 하다. 넘어와서 자일을 바위에 걸치고 야매 빌레이를 보고 영자크랙 앞으로 갔다. 거의 오늘의 첫 등반이 시작되는 느낌이었다. 내 등반 인생의 가장 큰 도전?! 밍구쌤이 쉽게 가는 법을 알려줘서 오른쪽 높은 바위 위에 올라가서 왼발을 영자크랙 구멍에 높이 올리고 중심만 옮기는 식으로 시작했다. 든든한 왼발을 믿고 일어서면 바로 볼트에 손이 닿아서 바로 퀵을 걸고 자일을 통과했다. 이 위는 손가락 재밍 혹은 손가락 개스통?으로 올라가야 돼서 굉장히 믿음이 가지 않았다. 그래도 바로 옆에 퀵이 있으니까 밍구쌤한테 '저 후등이라고 생각하고 올라갈게요~'라고 말하고 일어섰다. 오른발을 올려 재밍을 해놓고 검지와 중지를 겹쳐서 일어선 다음 다시 손을 올려서 왼손 중지와 검지를 포갠 곳을 오른손으로 다시 누르면서 몸을 일으키니 나름 좋은 손홀드가 잡혔다. 적절한 위치에 볼트가 있고 동작이 몇 동작 안 돼서 생각보다 할만 했다. 이제 아까 좋았던 손홀드를 밟고 일어서면 언더 크랙이 나오고, 여기에 캠을 설치할 수 있다. 사실 더 무서운 구간은 이 위 레이백이다. 캠이 좀 불안하니까 자신있게 레이백을 할 수 없고, 그래서 크랙 사이로 파고들게 된다. 거의 허벅지로 그 틈에 끼어서 캠을 하나 설치하려고 하는데 자꾸 크기가 안 맞았다. 왼손에 힘이 점점 풀리고 있어서 그냥 치지 말고 갈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거기 매달려 있던 게 억울해서 결국 하나를 쳤다. 여기서 밖으로 나가는 게 제일 힘들었던 것 같다. 몸을 아예 밖으로 빼서 레이백 동작을 만들어야 되는데 믿을만 한 발자리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체감상 거의 가슴 높이에 있는 곳에 발을 올리고 일어섰는데 또 한 번 이만큼이라도 유연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구간만 넘어서면 아주 완만한 슬랩이라 뛰어서 올라갔다.

영자크랙을 걱정했던 것보다 너무 쉽게 끝내긴 했지만 여전히 참기름 바위는 두려웠다. 언제나 나를 위한 줄이 내려져 있던 곳... 그런데 밍구쌤이 올라오시더니 가면 채봉 선배가 줄을 내려놨을 거니까 잡고 가라고 하셨다. 신나서 가보니까 진짜 줄이 내려와 있었는데 나를 보더니 줄은 혹시 몰라서 설치해 놓은 거지 줄 잡고 올라오면 바로 풀어버릴 거라고 하셨다. 내가 정말 못 하겠다고 하면 줄을 풀어버리기야 했겠냐만은 이왕 영자크랙까지 선등 선 거 깔끔하게 참기름 바위까지 내가 직접 올라가서 완료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 치핑해놓은 곳이 오히려 미끄럽다고 생각했었는데 온 신경을 기울여서 밟으니까 발이 터지지 않았다. 치핑된 곳만 잘 찾으면 다음에도 무리 없이 올라갈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되고 나니 괜히 걱정했구나 싶기도 했다.

누구는 길로 쳐주지도 않는 고독길이라지만 이렇게 다시 등반을 시작한 뒤로 내 첫 멀티 선등이 끝났다. 시간이 늦어 정상이 한적했다. 우리끼리 사진도 찍고, 수현 언니가 무겁게 가져온 수박도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생각지도 못하게 모든 구간을 선등을 서게 되었는데, 끝나고 나니 이런 기회를 만들어주셔서 너무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분 선등으로 갔으면 더 재밌는 길을 갈 수 있었을 텐데 내 첫 선등을 위해서 함께 해주셔서 감사했다. 등반성이야 크게 없는 길이지만, 이제 세컨 봐줄 사람만 있으면 내가 원할 때 언제든지 인수봉 정상에 오를 수 있다는 사실에 너무 기분이 좋다. 또, 내 앞에 줄이 없는 상황에서 내가 느끼던 지나친 공포심도 많이 극복하게 된 것 같다. 앞에 줄이 없어도 사람이 등반을 할 수 있구나! 캠 설치를 좀 더 잘하게 되면 생일바위였던 인수B 정도는 조만간 다시 도전해볼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그 전에 후등으로 다녀온 다음에 확신이 든다면 가고 싶다. ㅎㅎ 아마 인수B를 선등 설 수 있게 되면 장비를 잔뜩 마련하게 될 것 같다. ㅎㅎ

2022/06/18 인수B

210925 인수봉 인수A 변형(후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