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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성장학회
작성자 김연옥
작성일 2003/12/14 (일)
분 류 진주소식
ㆍ추천: 93  ㆍ조회: 1447      
저수령의 악몽- 웬수같은 바람(대간21)


"한 잔 했는 가베."
무심히 던지는 옆지기의 한마디가 야속타.
"오늘 날씨 참 춥재?" 이렇게 물어봐 주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루종일 바람앞에 시달린 얼굴은 집을 들어서니 더 달아 오른다.
첨엔 허락만 해 주길 바랬었는데, 이젠 난 은근히 서운함을 표하곤 한다.
저녁시간에 태워만 주어도 고마운 것을,
돌아오는 시간에도 마중을 나와 주었으면 하는 바램.
대간은 중반을 넘어섰는데, 적응 되어야 할 몸둥인 물기잃고,
떨어진 갈잎처럼 서걱거리기만 한다.
지금이라도 그만두면 그만일 것을 이렇게 징징이면서도 주말을 기다리고,
또 그 길을 더듬어 가는 것은 무엇때문인지?

한차례 겨울비가 스쳐간 토요일,
연이어 보도되는 주말의 일기예보는 올 겨울의 가장 큰 한파를 예보했다.
지난 주 까지만 해도 가을을 얘기하며 떠나든 대간길이
한 주일 사이에 깊은 겨울안에 와 있다.
날씨와 함께 무거워지는 마음의 짐덩이. 배낭을 끌고 약속의 장소로 간다.
건장한 남정들의 무리속에, 깡기만 남은 중년의 여인네 몇.
언제나 맘 바쁜 손길들은 숨길 수 가 없다.

헐레벌떡 바쁜모습으로 보퉁이 보퉁이들을 손에 들고 나타난다.
내 가정에 완벽을 기해야만 우리의 대간길이 순조로울수 있기 때문에
날씨탓인지? 길이 멀어진 때문인지? 하나, 둘. 낯익은 얼굴들이 보이질 않는다.
결혼도 미친짓이고, 대간도 미친짓이라고, 슬그머니 걱정이 앞선다.
"완주 할 수 있을까?"

자정이 가까와지는 시간 소등이 시작되고, 잠깐의 뒤척임속에
어둠의 시간이 흘러 우리의 대간 달구진 벌재의 고갯마루에 서 있다.
겨울비의 끝자락으로 다가선 혹한. 어김없는 예보의 적중,
살을 에니는 듯한 칼날같은 바람은 몸과 맘을 붙들고 꼼짝을 못하게 한다.
대지를 보듬어 안은 칠흑의 어둠을 송두리째 삼키고도 으르렁이며 포효하는 폭풍.
이젠 더 이상 대간은 그리움이 아닌 것 같다. 걸어버리고만 싶은 마음의 빗장.
초가을 총총한 별을 헤이든 그리움의 밤하늘은 꿈이었든가?

배낭을 의자에 앉히고 창밖을 기웃거린다. 쉬이 내려서지 못하는 사람들.
건장한 남정들의 용기도 주춤이고 있다. 차창밖을 기웃거리는 시선들.
바람사이로 쏟아지는 시리고 푸른 달빛, 동짓달 열사흘의 상현.
달빛아래 반짝이는 하얀 결정들 "눈"
첫눈의 설레임이 바람보다 더 강한 그리움으로 우리의 발길을 끌어내린다.
재빨리 차에서 내려 비탈진 절개지를 올라 산길로 접어든다.
쏟아져 내린 별들이 갈잎 위에서 하얀 눈별이 되어 반짝인다.
하늘과 땅과 우리들의 머리에서 반짝이는 별들, 바람만 잠들어 준다면,
얼마나 아름답고 행복한 시간이련가?
첫눈의 대간길에 우리들만의 행복을 바람은 그냥 볼 수 없었든가 보다.

언제나 가파른 초입, 그리고 또 내리막, 언 땅을 덮은 갈잎과 싸락눈.
여인네들의 커다란 궁둥짝은 몇 번씩이나 엉덩방아를 찧어댄다.
봉우리 하나를 넘고 내려선 임도. 장목재.
다시 절개지를 올라 산길을 따른다. 오르막 능선
조금 비켜 서든 바람은 다시 능선을 타고 올라 우리의 살점을 할퀴어 댄다.
혹한 앞에 주둑 든 가슴. 찬 바람 만큼이나, 시린 달빛 만큼이나 ,
우리들의 분위기도 냉기가 스민다. 으르렁이는 바람만이 모든걸 끌어안고 있을 뿐이다.
앞서가는 입심좋은 오여사에게 넌즈시 말을 걸어 본다. 반응이 없다.
입막고 귀막고 입김에 안경가지 흐려지니 앞길이 캄캄이라고,
그렇기도 하겠다.

어둠속에서 바삐 문봉재를 지나고, 바람이 숨죽이는 능선을 내려서며,
뒤를 돌아다 보니, 휘영청 밝은 달이 봉우리끝에서 환히 웃고 있다.
너무나 아름다울 동짓달 달밤의 추억, 백설의 축복
살기등등한 바람이 야속키만하다.

능선아래 멀리로 마을의 불빛들이 보이고 왼쪽 바로 아래론 아주 가까운 민가가 있다.
불켜진 창을 두드리고 들어서고 싶은 꿀떡같은 마음.
뉘집을 들어 서면은 반겨 아니 맞을까?
심설산행을 적잖이 했었지만, 이런 혹풍속의 산행기억은 없었는데,
오늘 새로운 산행기록의 역사를 남기려 함인지?
그래도 되돌려 보내지 않은 발걸음에 한가닥 고마움을 느껴야 할까?
잠시도 멈출 수 없는 바람은 우리의 발길을 쫓아 저수령으로 몰아내린다.

눈 아래 나타난 차량의 불빛.
길을 잃고 헤매이다 발견한 민가의 불빛처럼 반가움의 탄성이 바람을 뚫는다.
밥을 먹고 가지 말까? 쉬고 싶은 핑계를 이리저리 생각해 보지만,
대간꾼의 핑계치곤 너무 어설프다.

차안에서 간단한 아침식사를 하고 다시 어둠을 뚫는다.
해가 뜨면 바람이 잘것인가? 구세주 태양을 기다리며 발걸음을 옮기건만,
동터오는 새벽의 바람은 더 더욱 살기 등등한 기세로 우리의 살점들을 찢어 가려하고 있다.
새벽 여명이 밝아오고, 서슬 푸르든 달빛도 힘을 잃어간다.
붉게 꿈틀이는 동녘, 일출의 기운이 일렁이는 봉우리. 마음의 온기도 꿈틀인다.
발을 동동이며 일출을 기다리는 사람들. 목을 축일 여유가 없다.
물기있는 모든 것들은 얼어가고, 기록을 위한 펜 마져도 얼어 버렸다.
오직 바람을 피해 한걸음 길을 줄여 가는 것만이 오늘의 일인 것 같다.

너무나 매서운 바람앞엔 일출마저도 힘겨이 느겨진다. 힘겨이 떠 오르는 아침햇살.
칼바람의 회오리 앞에서 느끼는 한줄기 빛의 감격. 아픔 만큼 배가 되는 기쁨.
배재로 가는 능선길 오른쪽으로 빼꼭이 들어선 잣나무숲의 푸르름이
시리고 차갑게만 느껴진다. 빠지지 않는 대간길의 감초. 헬기장을 지나고
싸리재를 지나 흙목 정상. 의아스런 이름의 봉우리에 기념식수 한 주가 휑그러니 썰렁허다.
정상이지만 바람이 비켜가는 봉우리인 것 같다. 오랜만의 휴식,
따뜻한 물 한 모금으로 목을 축이니 몸에 온기가 퍼지고 추위가 가시는 것 같다.

오늘따라 컨디션이 좋지 않은 막내 혜영,
속눈썹 끝에 매달린 작은 이슬방울이 투명한 고체로 반짝이고,
내 모자속을 비집고 나온 머리칼 몇가닥이 하얀 할미꽃 꽃술이 되어 눈앞에 서성인다.
송전탑옆을 지나니 나목의 울음 못지않게 철탑의 울음이 괴성으로 들린다.
길은 완만하고 편안하지만, 추위에 바람앞에 지치고 힘든 가슴은
그 어떤 아름다운 조망도 거부한다. 날은 맑고 시계도 밝지만 한번도 제대로
눈뜨고 되돌아 볼 수 없는 바람의 난동.
11시 모령재에서 아침을 예고 했었든 선두는 어디까지 달려 가 버렸을까?
썰렁한 묘령재엔 바람만 불고 있다.

힘들고 허기도 지지만, 모든 걸 얼어붙이는 한파 앞에
도시락을 꺼내 미지근한 밥 한덩이를 먹는다는건
생각만 해도 오싹 한기가 파고든다.
볕 바르고 바람기 없는 언덕빼기에 잠시라도 쉬어가고픈 마음.
잎 떨꾼 가지끝에서 바람을 맞고 있는 묘적봉의 시그널들이 안타깝다.
11시를 지난 시간, 제법 햇살이 퍼진 시간인데도 칼바람은
서슬퍼런 냉기를 버리지 못하고 모들 것을 얼어 붙인다.
묘적봉아래 가파른 경사지를 지나 바람기 적은 바위 아래서 점심자릴 폈으나
얼어 버린 찬들에 손이 가질 않는다.

왕대장의 바쁜 손길이 잽싸게 라면 한 솥을 끓여 낸다.
이리저리 구걸 끝에 얻은 한술의 밥이지만 따끈한 온기있으니,
오늘의 한파앞에 얼마나 큰 위안이랴 따끈한 라면국물 한컵을 먹고나니 살 것 같다.
조롱조롱 입가에 말들이 묻어나고 오랜만에 농담들이 오가는 여유가 있다.
"오줌발도 잘못하면 고드름되기 쉽상이니 돌아서지 말고
햇살 바른곳으로 조준을 잘 해야 한다고...."

이제 배부르고 시간 여유로우니, 도솔봉만 오르면 된다는
거짓말쟁이? 정대장 은근한 위로의 말을. 믿기로 할까?
오늘의 하이라이트. 도솔봉으로 향하는 마음이 여유롭다.
지나온 길에 비해 길은 조금 객기를 부려 보지만,
위험하다는 암릉구간들도 계단으로 새 단장을 하고,
무엇보다도 멀리를 조망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으니 참 좋다.
멀리 다가오는 소백의 대간길은 하얀 백설로 겨울단장을 했다.
도솔봉에 흐드러진 겨울꽃, 반가움과 기쁨과 아름다움의 탄성들이 쏟아진다.
가파른 계단 아래서 올려다 보는 하늘은 겨울의 서정을 담은 한폭의 동양화.
도솔봉 아래. 헬기장에선 카메라를 꺼내 볼 수 있는 여유도 생긴다.

얼어버린 카메라 셔터의 느낌이 개운친 않지만,
추억 한 컷 새겨 볼 수 있는 여유있으니
얼마나 큰 위안이랴. 약간 가파른 암릉을 지나 도솔봉 정상에 올랐을땐,
그리도 매섭게 몰아 붙이든 칼바람도 잠시 숨을 죽이고,
쉬어가라는 첨이자 마지막 여유를 준다.
울부짓든 나목들, 참지 못하든 커다란 철탑의 울음,
희뿌옇게 꿈틀이는 지나 온 산릉,
바람속으로 지나 온 새벽길이 꿈길처럼 아스라 하다.
돌아내려서는 눈길 앞에 가득이 다가서는 소백,
국망봉 뒤에 숨은 소백의 바람눈이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는 것 만다.

도솔봉을 지나면 산행이 종료될것처럼 편안함을 예고 했었든
대장의 얘기에 우리는 또 한번 속고,
마지막 마무리 삼형제봉의 오르내림에 다리는
물머금은 솜뭉텡이 같다. 봉우리, 봉우리 몇봉우리를 돌아 올랐는가?
지친 발걸음이 마지막 힘을 몰아 가까스로 오른 능선.
수그러지는 산세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한다.

산죽들이 이어진 완만한 내리막 능선길,
얼키설키 가지사이로 도로가 보이고,
소백으로 오르는 임도가 보인다. 얼마를 내려 섰을까?
산죽길이 끊이고 흙으로 펑퍼짐한 능선에 서니 오른쪽으로 샘이 있고,
바로 눈 아래 먼저 간 산우의 비석이 묻혀 있다.
명복을 비는 비문의 글들이 아픔으로 가슴을 때린다.
느~을 집을 나설 때면, 막연히 엄습하는 두려움.
"행여라도 예외일 수 없다는 마음"
젊은 친구 일것같은 생각에 마음을 더 아프다.
손 모으고 머리 조아리는 마음. 그리고 샘터로 내려가 마시는 물 한 컵.
온기가 느껴지는 미지근한 석간수 한 컵이 하루의 피로를 씻어 내린다.
큰 바위에 꽂힌 플라스틱 호스에서 떨어지는 물줄기.
응달에서도 얼지 않음이 신기함이다.

냉기서린 바람은 한결같지만, 발걸음 가벼웁다.
키 큰 낙엽송사이로, 냉기 스민 바람결사이로,
동짓달 짧은 해도 갈 길이 바쁘고, 먼 길 되돌아 갈 우리들의 발길도 마음 바쁘다.
닿을 듯, 닿은 듯, 산허리를 몇 바퀴돌아 내려선 고개
바람만이 넘나드는 죽령의 고갯마루,
하루의 몸부림이 서글픈 허무로 발길앞에 서성인다.

대간쟁이의 하루는 이렇게 끝나는가?
바람이여,
바람이여,
웬수같은 저수령의 악몽이여..........

단장한 주막집 초가에서 흘러 나오는 옛노래가 구슬프다.
이름아이콘 솔향기
2004-10-09 23:25
 다시 올 겨울 앞에서 김연옥님의 기록을 따라
바람만이 넘나드는 죽령의 고갯마루를 훌쩍 넘었습니다.
'물기있는 모든 것들은 얼어가고, 기록을 위한 펜 마져도 얼어 버렸다.'
글을 읽는 독자마저도 얼어버릴 것 같은 산행일기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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