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뚝새

ㅡ벽소령에서

쌍계사 일주문 입구에는

산다화 꽃잎이 눈밭을 온통 붉게 물들입니다

동안거 처소에서 화엄경을 읽는 스님들 목탁소리가  

눈 덮인 숲 속의 늑대 울음소리와 겹쳐지고

굴뚝새가 육자배기 읊으면서 벽소령을 찾습니다

피맺힌 해고소식에 분노의 촛불행진에 피멍든 첫사랑에

세상은 시끄러워 눈꽃 한 송이 바라볼 틈조차 없어도

누군가 착한 가슴과 연둣빛 세상의 꿈으로

벽소령 샘터에 보리쌀 한 됫박 부립니다

굴뚝새가 보리 나락 몇몇에 겨울 허기 지우고

장터목 너머에 있는 봄소식을 재촉합니다  

그 옛날 소 몰고 황톳길 걷던 농투사니 시름과

울먹이며 보리밥 한술 빌어먹던 어린 시절을 생각합니다

저무는 겨울바람을 눈밭에 묻어두고.